창의성 : 56 점 폐쇄성 : 56 점
당신은 선천적으로 기발하고 창의적이다. 굳이 창의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남들과 같은 것을 봐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르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실 당신이 보기에 이해하기 힘든 것은 보통 사람들이다. 당신에겐 분명한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을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사람들에게선 그런 게 도무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겐 규칙이 없으니 예측도 안되고 따라서 안심하고 만날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차이는 당신의 숙명이다. 뭐 어차피 당신은 남들이 뭐라 하던 별로 신경 안 쓰는 사람 아니던가?
당신이 가진 독특한 관점과 집요한 고집은 당신에겐 장점이 될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결국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서 성공할 때까지 실패를 반복한 사람들이다. 당신은 그걸 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능력이 당신의 장점이다.
당신은 표준을 따르지 못한다. 자신은 남들 하는 대로 한답시고 따라 해봐도 사람들은 당신을 황당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남들과 대화하거나 소통하기를 두려워한다. 아니 당신은 애초부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 주리라는 기대를 포기했다.
보통 당신 같은 괴짜는 사람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거나 미친 사람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어떤 경우에 당신의 생각은 남들을 화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혼자서, 남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틀어박혀서 일에 몰두할 때 가장 좋은 결과를 얻는다. 이제 남은 것은 당신의 그 창조성을 발휘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남들이 당신을 이해하든 못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당신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박생광
1904-1985. 호는 내고(乃古). 한국 역사상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창조한 위대한 거장. 평생을 가난과 천대에 속에 살면서 가장 독창적인 작품을 남기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음.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죽기 전 5년간 창작된 것으로, 그의 마지막 5년은 한국 미술계를 뒤흔들어 놓은 "전설"이 됨. 평생 골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스타일에 몰두했음에도, 놀랄 정도로 개방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예술가였음.
윤이상
1917-1995.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민족 운동가. 우리에겐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좌익 음악가로 알려져 있지만 외국에서 윤이상은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추앙 받고 있다. 동양 고유의 소재를 서양의 음악에 담아 동서양 음악의 통합을 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남북한을 위한 관현악을 작곡해 남북이 음악으로 하나되기를 염원했다. 음악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일제 시대엔 독립 운동에 참여키도 했으며 해방 후 고아들을 보살피며 음악 교육을 하는 등 사회 운동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깊이 생각하고 세심하게 작곡하는 이성적 작곡 스타일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진보적, 개혁적 작품을 많이 선보인 인물이었음.
이응노
1904-1989. 호는 고암(顧菴). 백남준과 함께 해외에서 가장 각광 받는 한국 출신 화가. 1958년 프랑스에 정착,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리며 세계적 아티스트로 발돋움함.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귀국해 옥고를 치렀으며 1977년 또 한번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한국 내에서의 모든 활동이 중단됨. 어마어마한 열정과 불 같은 창의력으로 미술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남겼으며, 강인한 개혁 의지로 예술과 관련된 사회 운동에도 깊이 관여함. 급진적이며 일탈적 성향이 강한 화가였음에도 폐쇄적이고 고지식한 면도 다분했음.
호르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 20세기 인류가 배출한 가장 창의적인 작가 중 하나. 독재 정권에 맞서 진보적인 집필 활동을 했으며, 조국 아르헨티나의 문예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임. 40대에 중병으로 뇌를 다친 후 창의력이 불을 뿜기 시작, [셰익스피어의 기억], [알렙] 등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단편 소설들을 써 냄. 특히, 그가 발표한 "끝없이 갈라지는 두개의 길이 있는 정원(EL JARDIN DE SENDEROS QUE SE BIFURCAN)는 하이퍼텍스트의 출현을 예견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록됨.

 

관계지향성 : 42 점 지배욕구 : 70 점

 



당신에게 상대방의 기분이나 입장에 맞추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내 생각, 내 기분에 상대가 맞춰야 뿌듯하다. 사실은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남의 생각이나 기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못한다. 세상은 옳고 그름으로 구분되고 내가 보기에 옳은 것은 상대가 보기에도 옳을 것이라 확신한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옳은 모습으로 세상을 고쳐 놓으려고 한다. 이에 성공하면 마음이 놓이고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잘 되지 않으면 화가 나고 우울해진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당신 마음대로 세상이 교정되는 일은 많지 않다.



자신감이 강하고 뚜렷한 주관이 있으며 남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쉽도 있다. 보통 말하는 ‘사나이’의 전형이다. 뒤에서 따르기 보다는 앞에서 이끌어가는 스타일이다. 연애를 할 때도 미리 알아서 결정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따라주기만 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다.



너무 상대방의 심정을 생각해 주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려는 욕심만 부리다 보면 꼴통이라고 불릴 수 있다. 특히 연애는 댄스와 같아서 앞으로 나섰다가 뒤로 물러서는 리듬이 중요한데 당신은 앞으로 나서기만 하려는 댄서가 될 위험성이 높다. 혼자 춤을 출 수는 있어도 같이 호흡을 맞추는 연애는 많이 어렵다.



독불장군,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는 옛말은 중요하다. 당신이 훌륭한 리더쉽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지휘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당신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나 기분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이 만족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더욱 더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곳간에 인심 나듯, 당신이 만족하고 여유가 있어야 남의 마음이 더 잘 보일 것이다.




오나시스 (Aristotelis Sokratis Onassis)


20세기 가장 유명했던 그리스 선박 재벌. 1906–1975. 오토만 제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출생, 1차 대전 후 터키에 의해 모든 재산을 압류 당한 뒤 아르헨티나로 이주, 이곳에서 오나시스는 가족의 담배 사업을 성공시킨 뒤 승승장구, 그리스로 이주해 선박, 유조선, 포경 사업에 진출하며 세계 제일의 "선박왕" 입지를 굳혔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사업가이자, 가장 악명 높은 바람둥이기도 했다. 그리스 선박 업계의 거물인 리바노스의 딸과 (정략) 결혼을 해 2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결혼한 상태에서 세계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 노골적인 염문을 뿌리다 결국 본처와 이혼, 본격적인 자유 연애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마리아 칼라스 때문에 이혼을 했으면서도 그녀와 결혼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여자들을 만나며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그는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을 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오나시스는 원래 결혼에 관심이 없었으나, 재클린의 고집에 의해 결국 결혼할 수 밖에 없었다고. 그러나 결혼 뒤 오나시스는 재클린을 "사치스러운 인형" 취급을 하며 또 다시 다른 여자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마리아 칼라스와 재회하며 재클린을 철저히 따돌렸다. 오나시스는 심지어 재클린과 저녁을 함께 먹은 뒤 바로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러 집을 나갈 정도였다. 그가 죽을 때는 재클린에게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은 채 연금 혜택만 주었다.



존 F 케네디 (John Fitzgerald Kennedy)

미국의 35대 대통령. 1917–1963. 명망 높은 정치 귀족 집안인 케네디 가문에서 태어나 최연소 상원위원을 거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극복한 뒤 미국의 영웅으로 칭송되며 역대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는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는데 관계를 맺은 여자에게 단 한번도 마음을 주지 않은 것으로 악명 높았다. 심지어 자신과 결혼한 재클린과 (암살되기까지) 평생 불화를 겪었는데, 일부의 평가에 의하면 재클린을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애 낳는 기계"로 취급했다고 한다. 케네디는 원래 결혼에 관심이 없었으나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로 30대 중반의 나이에 재클린에게 청혼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결혼 직전에 "총각 파티"를 위해 2주간이나 약혼자로부터 떨어져 지냈으며, 결혼한 뒤엔 재클린이 유산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뱃놀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는 등 무책임한 결혼생활을 했다. (한때 재클린은 이혼까지 생각했다.) 그는 철저하게 여성을 쾌락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스스로 자신의 여자 관계를 이렇게 묘사했다. "들어와서, 벗고, 끝내고, 굿바이 마담." 그럼에도 수많은 여성들은 케네디를 사랑했고, 관계를 맺은 뒤 버림 받았다.




피카소 (Pablo Picasso)


스페인 출신의 전설적인 화가. 1881–1973. 피카소의 연애 생활은 그의 작품 활동만큼이나 정력적이었다. 그는 여인들과 평균 10년 주기로 동거를 했는데, 매번 연인들에게 고통을 주며 일방적으로 헤어졌다. (정식 결혼은 단 두 번) 그는 23세에 처음 유부녀인 올리비에와의 동거를 시작으로 수많은 여성들과 동거를 하며 예술 활동에 영감을 얻었다. (실제로 피카소는 매번 새로운 여성과 어울릴 때마다 작품에 빛을 발했다.) 피카소는 엄청나게 매력적인 남성이었으나 그 점을 이용해 여성들을 짓밟았다. 1911년부터 동거한 에바 구엘은 병약한 몸에 자주 앓아 누웠는데, 이때마다 피카소는 병이 점염될까 봐 혼자 이사를 가버리곤 했다. 피카소와 처음 결혼한 발레리나 출신의 올가는 자신의 생업을 포기하고 아들까지 낳았으나 잔인하게 버림받는다. 워낙 수많은 여성들과 어울리고 씨를 뿌린 덕에, 피카소가 죽고 난 뒤엔 굉장한 소동이 벌어진다. 피카소의 3번째 동거녀였던 마리 발터는 피카소를 저승에서 보살펴야 한다며 목을 매 자살했고, 올가 사이에서 난 아들인 파블로는 약물 중독으로 사망, 손자 파블리토는 피카소의 장례식에 찾아왔다가 마지막 연인이었던 자클린 로크의 완강한 반대로 음독 자살한다. 그리고 자클린은 수년간 피카소의 다른 자식들과 유산 상속 문제로 법정 다툼을 벌이다 13년 뒤 권총 자살한다.


관계지향성 : 14 점 감성지향성 : 28 점

 

당신은 사람보다 사물에 더 관심이 많다. 당신이 보기에 세상 일에는 언제나 합리적이고 불변하는 정답이 있는데, 그 정답을 헷갈리게 하는 게 감정이고 인간관계이다. 그래서 당신은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을 만난다면 같이 어떤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만날 뿐이다. 당신은 사람을 만나서 하릴없이 수다를 떨거나 술 마시는 시간을 제일 아까워한다.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일을 하고 싶어한다. 물론 당신에게도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그런 고민은 남들이 겪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초보적이고 단순하다. 만약 당신이 남자라면 이런 특성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변에서 좀 냉정하다는 평을 받긴 하겠지만 그게 다이다. 하지만 당신이 여자라면 좀 피곤했을 것이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무덤덤하고 냉정하냐는 비난이나 좀 여자답게 굴라는 충고는 익숙할 것이고,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여자 친구들이 당신을 애인처럼 여겼을 가능성도 있다.


당신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적합하다. 옳고 그른 것을 흔들리지 않고 판단하거나 사실들을 조직화하는 데에 당신의 강점이 있다. 분석하고 인과관계를 추론하고 공식과 모형을 만들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등의 일이 당신이 즐기고 잘하는 활동이다.


당신의 논리적 태도는 객관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는 유용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 사람들의 문제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찾은 합리적인 해결책을 강요하다 보면 당신은 냉혈한으로 오해 받기 쉽다. 무엇보다 당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에 있어서는 초보자이다. 당신이 가장 무력해질 때가 연애 감정에 빠졌을 때다. 연애야 말로 비합리적인 감성의 소용돌이니까.
당신은 사람보다는 연장, 도구, 기계를 다루는데 더 뛰어나다. 논리적으로 예측이 안 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당신의 전공분야가 아니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당신은 더 혼란스러워지고 피곤해진다. 고로 어울리지 않게 친구들을 많이 사귀려 하지 말라.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도 좀 어색하다. 단, 타인의 감정이나 기분을 배려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당신 같은 사람은 비교적 드문 편이다.
유럽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성 수학자, 소피 제르맹
1776-1831. 프랑스의 수학자 겸 물리학자.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오직 독학으로 수학을 배워 18세기 철옹성 같았던 남녀차별의 벽을 뚫고 유럽 제일의 여성 수학자로 발돋움한 천재 여성. 당시 학계의 무시무시한 차별 속에서도 수많은 남성 학자들의 자발적인 지원을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현대 건축학 및 초고난이도의 수학 이론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함. 그러나 그녀는 조국 프랑스로부터 그 어떤 보상이나 명예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맘.

수학자에서 프로그래머, 그리고 해군제독, 그레이스 호퍼

1906년 생. 컴퓨팅 역사상 가장 지대한 업적을 남긴 여성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해군제독. 상업적으로 가장 거대한 성공을 거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COBOL)을 탄생시키고 보급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컴퓨터 버그"의 단어를 만든 장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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